2월 3일 주일예배
시편 16:1-11
들어가는 말
어떤 소설에는 고참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쓰는 편지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악마는 “기독교인들은 영락없는 쾌락주의자들이다. 고난의 십자가, 환란과 핍박 등은 표면적인 모습일 뿐, 그들의 심연에는 ‘영원한 즐거움’을 추구하고 거기에 빠져 있다”고 빈정댑니다. (C.S.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신앙인들에게 ‘영원한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고 ‘고난과 슬픔’을 당하며 살다가, 죽어 천국에 가서 ‘영원한 기쁨’을 갖는 것일까요. 그렇게 되면 그것은 고행주의처럼 보일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라는 주제는 어떻게 보면 지난 주 말씀 중에 나누어 보았던 ‘그리스도인의 고난’이라는 주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기쁨’에 대한 이론적인 기초에 대해 먼저 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달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주제로 생각을 해보았고, 이달에는 ‘그리스도의 기쁨’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에 관해서는 다양한 측면이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성경적인 기초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서 첫째, 기쁨의 동시성, 둘째, 사랑과 의무, 셋째 기쁨의 조건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중에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길가던 경찰관에게 교회로 가는 길을 좀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가는 길에도 많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여행자는 그 경찰을 만나 물었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많던데, 왜 굳이 먼 거리의 교회를 알려주었습니까?” 그 경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예배를 보고 나오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 교회 교인들은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여서 그 교회를 추천했습니다.”
1. 기쁨의 동시성
앞서 말씀드린 C.S.루이스의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고참 악마가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인의 현세에서의 고난과 슬픔의 심연에는 더욱 큰 ‘영원한 기쁨’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것으로 기독교인이 쾌락주의자라고 한다면 그것도 맞습니다.
신자가 추구하는 것이 세속적인 쾌락과 다를 뿐이지, 성경적인 기쁨을 추구함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최종적인 가치는 ‘영원한 기쁨’을 추구함에 있습니다.
마약을 취하고 몽환에 취하듯, 출세와 성공을 하고 명예에 취하듯, 음악을 들으며 음감에 취하듯, 기독교인은 ‘영원한 기쁨’에 취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모습을 ‘새 술에 취하였다’고 평가했던 것처럼 영적인 충만과 하늘의 기쁨이 신자의 삶에는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신자가 가지고 믿고 있다는 ‘영원한 기쁨’이 아무런 증거도 결과도 영향도 나타나지 않고 단순한 현실적인 환란과 십자가의 고난에 지친 모습만 신앙의 결과로 남아 있다면 고행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는 고행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자의 기쁨은 동시적이어야 합니다. 그 믿고 있는 바 ‘영원한 기쁨’은 지금 현재의 삶에 영향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가 ‘기쁨’이 있습니다. 신자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반드시 드러나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쁨’입니다.
-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사랑과 의무
존 파이퍼 목사는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한 남편이 아내에게 잠들기 전에 굿나잇 키스를 해야만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해요. 그런데 의무감만으로 해서는 안되요.” 그 뜻은, 아내를 사랑하는 자발적인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면, 남편의 키스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겁니다.
십계명의 첫째는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너에게 두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신명기 6:5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적용하셨습니다. (마22:37)
의무와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포함됩니다.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함에는 의무로서 지켜야하는 도덕적인 규칙과 의무로서 행해야 하는 사랑의 표현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만일에 사랑이 없이 도덕과 행동만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며, 도덕과 행동이 없는 사랑은 속 빈 강정 같고 울리는 꽹과리 같은 것이 됩니다(고린도전서13).
마찬가지의 원리가 신자의 ‘영원한 기쁨’에 적용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에게는 성령의 열매로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고난과 십자가’만 남아 있다면 ‘뭔가 부족한’ 고행주의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며, 신자가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있다면 아직 성장이 필요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일 겁니다(고전3:1).
3.기쁨의 조건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11).
우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순종의 관계를 생각해봅시다. 지난 달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누차 말씀드렸듯, 신자의 복과 구원의 은혜는 행위의 결과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믿음의 다른 면으로 신자의 적극적이며 전적인 신앙의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복과 순종은 조건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성경적인 시각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철모르는 아이가 병이 들었는데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약 먹기를 싫어합니다. 엄마가 제안을 합니다. “약을 잘 먹으면 맛있는 과자를 줄게.” 엄마가 아이에게 간식을 주고 싶어서 과자를 준비한 것과 병을 치료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지만 지금은 조건과 결과처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 ‘영원한 기쁨’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그 기쁨을 ‘누리라’고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살전5:16)”
누가복음 12:33에는 이런 예가 있습니다. ”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여기서 구제와 하늘의 보물은 조건과 결과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소유를 담아두는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을 담는 주머니는 당연히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이미 ‘하늘의 보화’도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도 주셨습니다. 우리의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의무이며 명령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을 실천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의 기쁨’을 맛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16-22의 청년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마19:16-22)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복과 순종은 조건도 결과도 아닙니다. 사랑의 관계이며 그 안에서 더욱 풍성해지는 의미이고 세상에서 보여지는 천국의 능력입니다.
-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성령의 열매: 희락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람은 ‘즐겁게 하는 일, 즉 엔터테인먼트”로 세계관을 형성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쾌락을 신으로 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희락’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기쁨’을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행복이 최고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희생과 순종을 통해 ‘영원하 기쁨’을 추구하며, 그것을 온 힘을 다해 구합니다. 기쁨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기쁨’을 추구하며 거기에서 우리는 최고의 행복을 만나고 누릴 것이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