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거룩하라 (1)

3월 8일 주일예배

너희는 거룩하라 (1)

레위기 13:1-8

들어가는

전자제품이나 기계 등을 구입하면 언제나 사용법 책자가 따라 옵니다. 그런데 대부분 잘 보지 않거나,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읽어보고는 덮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용 중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꺼내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자세한 내용을 토씨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정확하게 따라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목사로서 성경과 도서들을 매일 읽고 사용하지만 자주 찾거나 인용하는 책이 있고 많은 경우 그냥 지나가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구약성경의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제사법이 주로 설명이 되어 있는 제사 매뉴얼인데 중요하면서도 자주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최근에 레위기를 깊이 읽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19가 전 대륙으로 확산일로에 있기 때문에 이런 전염병의 경우 성경은 어떻게 교훈하고 있는지를 바르게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경우 뿐만 아니라 향후 비슷한 일들이 다시 발생했을 경우 성경의 위기 관리 방법이 지혜와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1. 예방과 방역은 불신앙인가?

우선 전염병이 창궐할 경우 신자들이 종종 빠지기 쉬운 생각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방과 방역은 불신앙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금번의 경우 저희 교회느 시애틀 지역에서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한 첫번째 교회가 되었습니다. 국가 공무원, 기업과 사회 전역에서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안 교회는 약간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이 확연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교리적인 문제 한 가지만 오늘 설교와 관계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주제를 다룰 때는 제외시켜야할 소주제들이 있습니다. ‘제약회사에서 예방약을 오용할 경우에 관한 윤리적인 문제, 그리고 방역을 이유로 정부가 교회 모임의 기초인 회중예배에 간섭하는 경우에 관한 윤리적인 문제 등’입니다. 오늘은 범위를 좁혀서 방역에 관한 내용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방역과 격리는 시기적으로는 고대라고 볼 수 있는 레위기의 기록 당시에 이미 제사장들을 통하여 시행하고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 사이에 질병에 대한 의료적 접근에 대해 거부 혹은 소원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신앙의 이름으로’ 그렇게 할 경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 근거 중의 하나로 마가복음 16장 17-18절을 인용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본문은 표면적으로 그렇게 말씀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그렇지만 이 말씀의 배경이 분명히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선교적인 상황에서 주신 특별한 말씀입니다.

저는 선교사 출신의 목사로서 그 말씀의 초자연적인 약속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선교사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주지 않는 선교 상황에서, 나아가서는 순교의 상황에서, 선교사는 종종 그 복음 전파의 상황에서 고립되기 쉽습니다. 파송교회는 바다 건너에 있고 가족들이나 선교팀으로부터 먼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 때에 오직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동행 뿐입니다.
그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도우심만이 선교사의 사역의 근거가 됩니다.
때로 신자가 처하는 세상의 상황은 위험합니다. 때로는 패역한 불신앙의 땅에 가야하고, 자연의 폭풍우와 야생 짐승들과 독있는 생물들을 만나기도 하며, 적의를 가진 사람들과 악한 세력들을 직면해야합니다. 그럴 때에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우리가 의지할 분도 역시 그 하나님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그렇지만 우리는 필요없는 환경에서 ‘고의로 독을 마시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시는지 독약을 마시고 죽는지 안죽는지’ 시험해보지는 않습니다. 뱀에게 물리면 독이 퍼지는지 그렇지 않은지 테스트로 뱀을 집어보지는 않습니다. 병든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치료를 위해 손을 얹어 기도하는 것이지, 기도하면 병이 낫는지 낫지 않는지 테스트해보지는 않습니다. 그건 바른 믿음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경우는 오히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던 장면과 맛닿아 있습니다. 처음에 떡으로 시험했던 마귀는 두번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와서 보호해 줄 것이라’고 시험합니다. 이 때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러한 시험의 자세는 믿음을 가장한 인위적인 시험이 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2. 너희는 거룩하라

베드로전서 1:16에서 사도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는 레위기 11:45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스러움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신자들의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거룩성한 성품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거룩은 신자의 구원을 교훈하는 곳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이 성도 구원의 근거이며 방법이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레위기는 점염병에 관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지해야합니다. 전염병은 일단 생겨서 확산되기 시작하면 인간의 힘으로 방어하기가 어려운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전염병 앞에서 우리 신자들이 반드시 가져야하는 교훈은 ‘죄악이 전염병 처럼 창궐하게 될 때에’ 방역과 격리로 하나님의 공동체를 보호하던 레위기의 매뉴얼을 숙지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적인 의미와 교훈들이 담겨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병은 판단하고 환자를 격리시킵니다. 거룩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죄가 전염병처럼 번질 때 하나님의 의인들은 스스로의 격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을 지켜냅니다. 그것이 죄를 상대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거룩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레위기의 제사를 더 이상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너희는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부탁으로 모든 신자의 삶에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3. 전염병 : 악성 피부염

시편66:18에서 다윗은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않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뜻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기도가 헛수고가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은 의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함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여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경건한 사람은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깊은 자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나의 죄와 타락은 너무 깊은데 내가 입은 의는 너무 깨끗합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은 감사가 있고,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은 참회의 눈물이 사무칩니다.
우리는 경건할 수록 더 경건하려고 애쓰며, 자신의 죄를 더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한 신자가 불만을 토로합니다. 자기 친구가 있는데 늘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면 되지 왜 죄를 짓고 날마다 용서해달라고 우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은 20년동안 죄를 짓지 않았고 기도할 때 그렇게 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이 말합니다. ‘아니요, 당신이 불쌍합니다. 지금 그 말은 20년동안이나 제대로 된 기도를 해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시편 기자의 고백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허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마음에 품은 채 기도하는 사람, 죄를 부여잡고 놓지 못하며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려는 사람은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교만한 죄인은 그리스도를 우너하고, 자신의 파티도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원하고, 자신의 정욕도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원하고 자신의 고집도 원합니다. 하지만 참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오직 그리스도만 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무엇이든 하고, 무엇이든 포기합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독한 마음을 가지고 저주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주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께 더욱 불순종하도록 더 큰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 합당치 않을 겁니다. 죄로 가득한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를 하나님도 존중하지 않으십니다.
신자들 사이에 괴상한 기도 이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수인 취급하는 기도자들이 있습니다. 기도는 마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손가락만 까딱하면 쪼르르 달려와 우리의 변덕을 빠짐없이 맞춰주려고 대기하고 기다리는 천상의 사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신자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전쟁과 암이 사라지도록 합심해서 기도한다고 이들의 기도가 당장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세상에는 전쟁과 질병이 있습니다. 전쟁과 질병이 정해진 때보다 앞서 완전히 사라지길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와 질병과 죽음으로 고통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로하고, 건지시며, 우리를 치료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나 치유가 언제나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치유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파괴적이고 왜곡된 개념입니다.
뇌성마비를 앓았던 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년의 믿음은 생기가 넘쳤고, 성격도 옆 사람까지 즐겁게 할 만큼 쾌활하고 낙천적이었으며, 남달리 생산적이기까지했습니다. 대학도 우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이런 청년이 어느 날 목사님께 사무친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귀신들렸다고 생각하세요?” 청년은 이렇게 물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묻나요?” 청년은 그간에 일어난 일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은 성경의 약속을 ‘붙잡고’ 청년이 뇌성마비에서 놓여나도록 ‘합심해서’ 기도했다는 겁니다. 친구들은 청년에게 손을 얹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고, 청년이 곧 나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낫는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자, 친구들은 청년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청년을 탓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청년의 극심한 죄가 치유를 가로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친구들은 청년이 귀신들렸다고 했으며, 청년은 마음에 말로 다 못할 상처를 받았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고, 이들은 열심만 있으면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미성숙할 뿐 아니라, 오만과 뻔뻔함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4. 확진 과정 : 정하고 부정함을 진단하는 규례

레위기 13장은 전염병의 발견과 확진을 위한 자세한 매뉴얼의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전염성이 있는 질병들의 피부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데 21가지의 병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는 천과 가죽에 생기는 전염병도 있습니다. 14장에서는 시설에 까지 영향을 주는 전염병이 있습니다.
처음에 병이 발견되면 신속히 제사장에게 보고해야합니다. 제사장은 일주일간 관찰하는 기간을 갖지만 일단 병이 발견되면 격리 조치를 합니다. 병에 대한 대처 방법이 많이 없었고 특별히 전염병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었을 겁니다.
특별히 천과 가죽에 생긴 짜라아트는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균이나 포자에 의한 오염으로 건물에 생긱 색점과 같은 현상입니다. 이 경우 일주일간 관찰하여 색점이 퍼지면 즉시 천과 가죽을 불태워야합니다.
사람은 확진이 되면 완전한 회복이 될 때까지 평생 격리를 하여 성밖에서 살게 됩니다. 기물들은 불태워 방역하고, 건물은 폐쇄 조치하고(14:33-53) 더 관찰하며 완전한 방역과 수리를 해야합니다.

5. 회복 판정과 정화의식

14장은 전염병으로부터 회복되었을 때 격리되었던 사람을 다시 복권시키는 과정에 관한 매뉴얼이며 중간에 시설에 관한 확진과 수리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57절은 이렇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느 때는 부정하고 어느 때는 정함을 가르치는 것이니 나병의 규례가 이러하니라”
11절에는 ‘정결하게 하는 제사장’, 즉 의료분야에 특별한 전문 제사장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1)각종 제사가 갖는 영적인 의미가 있으며,
2)흐르는 물, 우슬초, 홍색실, 등이 갖고 있는 항생 방역의 지혜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6. 회복의 기쁨

창궐했던 전염병으로부터 회복 판정을 받고 몸을 정결하게 씻은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환자를 생각해봅시다. 얼마나 큰 감격과 기쁨이 있었을까요? 그 자유함은 어떠할까요?
죄악이 전염병처럼 온 세상을 뒤덮을 때 경건인들의 믿음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더욱 세밀하게 병의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거룩을 지켜내던 그들의 모습과 지혜 앞에서 늘 숙연한 감동을 느낍니다.
병앞에 아무런 대책도 없었던 때, 제사장의 격리 판단에 순종하고 미련없이 성밖으로 나갔던 사람들, 다시 돌아올 소망이 있었을까요? 그들에게…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의 기쁨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이사야60:1-5)”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사야61:1-3)”